최근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 부부의 사연이 화제가 됐어. 1982년까지 총리직을 지낸 93세 드리스 판아흐트와 그의 동갑내기 부인 외제니 여사👩🏼❤️👨🏼 이야기야. 건강 악화로 인해 고통받던 부부는 서로가 상대를 남겨두고는 먼저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의사의 도움을 받아 동시에 생을 마감했대. 약물💉을 이용한 안락사를 최초로 합법화한 네덜란드에서도 동반 안락사는 흔치 않은 사례야. 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가 교리에 어긋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생을 마치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어. 이렇게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은 유럽에서도 현재진행형이야. 안락사, 존엄하게 죽을 인간의 권리일까? 아님 생명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일까? 안락사,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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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 ‘불치병에 걸리면?’ ‘뇌사 상태가 된다면?’ 같은 상상이 들 때 막연하게 ‘안락사를 고려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 있어🤔 하지만 진지하게 안락사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면 쉽게 선택하지 못할 듯해. 숨이 붙어있는 것 자체가 아까울 것 같거든😇 정말 미련이 없다고 생각 한 것이라도 마지막이 되면 아쉽기 마련이잖아. 그게 삶이자 인생이라면 더욱 내 손으로 먼저 끝내진 않을 것 같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도 있고😅
🌊비니: 병에 걸려 고통이 너무 크면 안락사 생각이 들 것 같아..😢 살아있는 게 더 괴로울 것 같거든. 거기에 치료 가능성까지 희박하다면 더더욱. 유튜브에서 불치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안락사를 고려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 태어날 때는 몰라도 죽음은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 같고💦 2022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통한 사망한 사람은 8720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5%에 달했어. 50년 뒤 우리나라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늘보: 크게 둘 중 하나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안락사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비니(🌊) 말처럼 치료 가능성이 없는 질병에 걸려 아주 오랫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거나, 또는 치료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서 남은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 상황이거나. 아직 두 경우 모두 겪어보지 못했으니 섣불리 예상하긴 힘들지만, 나는 지독한 개인주의자라 그런지 적어도 후자의 상황에서 안락사를 선택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내 인생에서 나의 존엄성만큼 중요한 건 없으니까! 후손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내가 열심히 돈을 벌어놓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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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 안락사는 인권이 이상적인 수준에 도달했을 때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안락사가 권리가 아닌 의무가 될 수 있어서야😢 병원비🏥, 부양 등 부담이 든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억지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어. 그래서 난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경우에만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까지만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해.
🌿버즈: 현재 한국🇰🇷에서도 안락사가 가능해. 그 범위가 ‘자발적 + 소극적 안락사’로 한정되긴 하지만 말이야. 환자 자신이 회생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DNR을 시도하지 말라는 요구서를 작성할 수 있어. 연명치료를 통해 끝까지 고통 받으며 목숨을 살려두는 것보단🫥, 때가 되었을 때 떠나겠다는 마음😇일 거야. 난 우리나라에서도 ‘자발적 + 적극적 안락사’가 가능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아메(☕️) 말처럼, 전제조건 중 한 가지는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국가로의 진보가 되어야 하고. 낳으라고 독촉만 하는 국가🤬가 아닌, 탄생 후의 삶도 일정 층위 이상으로 책임지는 국가가 되어야지. 또,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이 성인🧑🏻이고, 정신적으로 온전🤝🏻하며, 요구 과정에서 강압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 되어야 해. 당연한 것이지만, 죽음을 맞이하기 30초 전이라도 자신의 요청을 철회할 수 있어야 할 거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선택으로 삶을 살게 된 게 아니잖아. 어느 날 정신차려보니 이 험한 세상에 던져져 있는 건데..🌪️ 떠날 때만이라도 온전한 내 선택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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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 죽음이 두려운 이유 중 한 가지는 ‘불확실성😥’ 때문일 거야.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 지 알 수 없으니 대비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이지. 물론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어.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정된 일을 위해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 두렵지만, 내가 평소에 좋아했던 음식🥘을 한 번 씩 더 먹고. 두렵지만, 바깥에 나가서 햇볕☀️도 한 번 더 쐬고. 두렵지만,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될 수 있을 거야. 아쉬운 일은 여전히 아쉽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행복했던 일은 긴 시간이 지났는데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여전히 행복하구나’라는 마음으로 말이야.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허망하다😩’고 이야기하잖아. 남겨진 사람들은 그 허망함에 자책을 하기도 해. 죽음이 예정돼 있다면, 적어도 누군가의 죽음이 ‘허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갖지 않을까?
☕️아메: 죽음이 가진 허망하다는 느낌이 사라질 수 있다는 버즈(🌿)의 말에 크게 공감해. 죽음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는 건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봐. 갑작스러운 죽음은 너무 슬프잖아🥺 다만 ‘결말을 알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허무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같이 들어. 영화나 드라마만 보더라도 결말을 알고 보는 작품은 덜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아? 난 내 인생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면 일상이 좀 재미가 없어질 것 같아.. ‘한치 앞도 모른다’는 점이 인생이 재밌는 이유라고 생각해서😊
🕯️연소: 과거엔 삶의 총량은 한정적이지만 예측 불가능한 것이었어. 예정된 죽음은 개인으로서는 스스로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할 수 있겠지만, 사회에서는 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탄생과🍼 죽음☠️ 모두를 계획 하에 놓음으로써 개별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거지. 최근 개봉한 영화 <플랜 75>🎬는 안락사를 국가차원에서 지원한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제작됐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정부가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플랜 75’를 발표하는 거지. 청년층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거야. 이처럼 예정된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일부 권력자들에 의해 이뤄진다면, 인간 개별에게 진정한 자율성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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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보: 노년은 말 그대로 인생의 말년🧓🏻이잖아. 노년을 마무리하는 게 힘들다는 건 결국 인생 전체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고된 일이라는 걸 반증하는 것 아닐까? 인생 전반에 걸쳐 노년기를 대비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연금💰일 텐데, 한국의 경우에는 부실한 연금제도 운영이 꾸준히 지적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상황이야. 우리나라의 노인 고용률은 OECD 국가의 평균치인 22.3%보다 두배 가량 높은 편인데, 거꾸로 노인 상대 빈곤율은 OECD 국가 평균인 13.5% 보다 월등히 높은 43.8%에 해당한대. 더 많이 일하면서 더 많이 가난하다니.. 적어도 한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닌 게 확실한 것 같아.
☕️아메: ‘돈을 벌 시간과 기회💵'가 너무 빨리 사라진다고 생각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려면 충분한 돈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사회의 다수는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잖아. 평균 수명이 60세~80세인 경우엔 젊어서 번 돈으로 노년기🧓🏻를 보낼 수 있었을지 몰라도, 평균 수명이 100세가 넘은 지금 시점에선 벼락부자가 되는 게 아닌 이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 그래서 난 60대에 정년 퇴직으로 노동 시장 밖으로 퇴출되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앞으로 절반이나 더 살아야 하니까!🙀 최소한 젊은 노인들에게는 제대로 된 일자리에서 일 할 기회가 필요해.
🕯️연소: 과도한 성장주의🏃에 노출된 가족 시스템이👨👩👧👦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자녀가 있는 가정의 경우, 보호자는 양육의 의무를 가지는데 여기에 교육📚도 포함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우리나라는 대개 아이의 계층 상승📈 혹은 대물림을 위해 교육에 과도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어. 이에 따라 양육자는 노후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워 말년에 자식에게 기댈 수밖에 없게 되는거야. 은퇴 후 성장한 자녀가 독립까지 하게 된다면 사회와의 연결🤝도 느슨해질테고. 실제로 남성노인이 직장 혹은 생계활동을 그만 둔 이후 느끼는 우울감🥲이, 그렇지 않은 남성노인에 비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필요가 없어진’ 세대는 가족 내에서도 뒷전으로 자리잡고 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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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 내가 생각하는 웰다잉😪은 ‘언제 죽어도 상관없을 만큼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죽는 것’이야. 너무 이상적✨인 거 아니냐고? 정말 그럴까? ‘언제 죽어도 상관없을 만큼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해. 1️⃣ 의식주가 보장 받는다. 2️⃣ 신체⋅정신적으로 건강하다. 3️⃣ 대인관계에 문제가 없다. 먼저, 인간다울 정도의 의식주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보장하는 주체🤝🏻는 누구여야 할까? 어떤 환경에서 살아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개인의 성격과 같은 미시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가족/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돈은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말, 어떻게 생각해? 난 ‘행복을 사기에 가진 돈이 부족하다🤑’는 말로 해석했거든. 바로 위에서도 언급됐지만,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야. 노년의 삶에 가까워질수록 빈곤해진다는 거지.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노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는 거야.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국가의 기조에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닥쳐올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모두가 ‘웰다잉’ 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국가🇰🇷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야 해.
🌊비니: 기대수명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고령화 시대에 웰다잉(Well-Dying)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 ‘웰다잉 지도사 자격증’이라는 것도 생겼더라구✍🏻 내가 생각하는 웰다잉은 ‘너무 외롭지만은 않은 죽음’이야. 삶의 마지막에서 느끼는 감정이 외로움이라면 조금.. 슬플 것 같아🥺 그래서 잘 죽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작은 고민이라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노인들의 웰다잉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노인 지역사회 연결이라고 생각해. 인구학에 있는 ‘이스털린-프레스턴 이론’을 살펴보면, 코흐트의 크기가 자살률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 베이비부머처럼 코호트 크기가 큰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입시, 취업, 결혼 등 경쟁하는 시기에 자살률이 높고↗️, 은퇴하고 경쟁에서 벗어난 후에는 다른 코호트보다 자살률이 낮았어🙆🏻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야. 점점 인구가 줄어드는 저출생 시대에 사람들 간 연결은 더욱 중요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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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 사랑하는 반려견들🐾을 떠나보낸 뒤에 나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죽음까지 생각해보게 됐어. 어릴 때는 마냥 평생 어리고 건강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우리는 모두 늙고 병들고 죽을 수 밖에 없잖아..💦 갑작스럽게 죽음이 나한테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도 무섭고🥺 그런데 죽음을 인지하고 나니 삶이 조금 더 가치있게 느껴졌어. 광활한 우주 속 작은 행성인 지구에서 태어나 찰나의 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도 소중하게 느껴지고..✨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상상해보는 과정이 꼭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버즈: ‘무병단수’.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야. 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한 번 사는 인생, 짧고 굵게 살다가 떠나겠다!’는 마음이라 그런가 봐. 또, 이기적인 이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세상에 혼자 남겨질 자신👵🏻이 없어서 이기도 해. 나는 대문자 N이라 죽음💀에 관한 상상을 정~말 자주하는데, 내 죽음을 상상할 때는 늘 누군가 곁에 있었던 것 같아. 사랑하는 사람❤️과 한날한시에 떠나는 건, 누구나 바라는 거잖아. 적극적 안락사가 도입된다면 마냥 허황한 이야기도 아닐 거구.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언제가 되든, 무엇이 되든, 나는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 하고 있어. 영혼으로 둥둥 떠다니면서 ‘꾸웨엑..’ 하고 싶지 않거든🤣
🦥늘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아주 가끔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곤 하거든. 문득 내가 사라져도 이 세상🌏은 잘 굴러갈 거고,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 느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오싹해지더라😱 신앙이 없는 내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은, 알베르 카뮈가 주장했던 것처럼 그저 매일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구석구석 체험하는 것밖에는 없지 않을까? 또,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만큼은 피하고 싶다는 거!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내가 세상에 남길 것들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만큼은 마지막으로 주어졌으면 좋겠어💟
🕯️연소: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양가 감정이 끊임없이 밀려들곤 해. ‘어차피 끝을 맞이할 거라면’으로 시작해 무기력😩해지기도, 결의를 다지며 ‘얼마 남지 않았어!🤩’라고 희망을 노래하기도 하지. 이런 모순의 반복🔃을 보면서 문득 나는 뭔가를 이루고 싶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 어떤 걸 가지고, 어떤 걸 향유하는 지 보다는 “세상에 어떤 물음을 남기고 떠날까?”를 많이 고민해 봤던 거 같아. 그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일 수도, 혹은 더 넓은 세상에 던지는 물음❓일 수도 있겠지? 그 질문은 10대, 20대의 몇몇 챕터를 지나올 때마다 변화하기도 했고. 내 삶을 완성할 수 있는 물음과 답을 찾을 때까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혀 보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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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22년 82.7세로 늘어났어👏 무려 20세나 늘어난 거야!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도 점점 바뀌고 있어. 죽음이 그저 집🏠에서 누워있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 중 하나가 된 거야. 2022년 서울대병원 조사에서는 국민 76%가 안락사 허용에 찬성하기도 했거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존엄하게 죽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지. 그런데 중요한 건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라는 거야💦 심지어 때때로 노인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해. 이런 상황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야🤔 노인의 아름다운 죽음보다, 아름다운 삶에 대해 논의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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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어디까지 알 권리가 있을까?🤔 오늘은 영화 ‘추락의 해부’를 소개하고 싶어. 칸영화제 수상작이라 이미 본 옾챗러가 많을 수도 있겠네😅 (여기서부터 스포 주의😇)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추락사로 어느 날 갑자기 유력한 범죄 용의자가 된 ‘산드라’의 이야기야.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과 안내견🐕인 탓에, 법정은 진실을 찾기 위해 주인공의 성적 지향성, 부부관계, 아들이 장애를 얻게 된 사연까지 일가족의 사생활을 해부해. 물론 유무죄를 가리는 법정에선 당연한 일이겠지만, 관객의 눈으로 그 자세한 내막을 보다 보면 ‘이런 것까지 알아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영화 속 ‘누군가의 죽음을 해부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 물론 죽음은 허망할 정도로 갑자기 찾아오는 탓에 남겨진 이들은 ‘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지만🥺, 가끔은 정도가 지나칠 때가 있잖아. 특히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인물이 사망할 때면 고인의 내밀한 사생활, 심지어는 종종 유서까지 언론에 공개되곤 해. 우리는 고인과 유가족의 어느 부분까지 알 권리가 있는 걸까? 일생의 한 조각뿐인 짧은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고 죽음의 이유나 진실을 알 수나 있는 걸까?
- ☕️아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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